티스토리 뷰
<헤어질 결심> 줄거리 및 감상평
이 영화는 제75회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으면서 깐느 박이라는 수식어를 다시 한번 증명해 낸 영화입니다. 칸 영화제에서 남녀 주연상을 제외하면 감독이 받을 수 있는 상은 총 5개입니다. 박찬욱 감독님은 그중에서 헤어질 결심의 감독상을 포함해 총 3개를 수상하게 된 것이니 깐느 박이라는 수식어가 꽤나 잘 어울리는 분이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서래는 해준에게 자신의 집으로 오라고 문자를 합니다. 해준은 이 여자가 라고 말하며 싫은 티를 내는 듯 하지만 서둘러 출발합니다.
해준의 입장에서 서래는 하품이 나오던 자신의 삶의 권태를 박살 내주는 대상인 것입니다. 이에 대해 아가씨와 헤어질 결심의 대사를 합쳐서 변주해 본다면 해준에게 서래는 내 인생을 붕괴하러 온 나의 구원자인 것입니다. 헤어질 결심은 해준이 세 번 외도를 하는 영화입니다. 우선 서래와의 관계는 선명하게 묘사되고 있으니 설명에서 제외하고요 해준과 수환 연수와의 관계에 대해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혜준과 수환 두 인물은 수사를 할 때 항상 같이 다니는 콤비입니다. 영화는 사실 처음부터 해준과 수완을 엮고 있습니다. 헤어질 결심의 첫 장면은 둘이 함께 사격을 하는 모습을 정면으로 잡는 장면인데 총을 반납한 뒤에 해준은 수완의 겉옷을 입혀줍니다. 헤어질 결심은 시작부터 우회적으로 두 인물을 연인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준과 수완의 관계를 사랑이라는 관점으로 접근해 보면 수완의 몇몇 행동들이 서래를 향한 질투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본인에게는 비용 처리 때문에 싼 음식을 먹으라고 말하던 해준이 서래에게는 값비싼 초밥을 대접하는 것을 보고 수완은 분해하기도 하고 해준이 서래에게 치약을 짜주는 모습을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노려보기도 합니다. 또한 잠복 근무 중에 서래가 할머니의 마사지를 해주는 모습을 지켜볼 때, 수완은 마치 내가 더 잘할 수 있다는 듯 마사지 기계로 해준의 어깨를 자극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준이 서래를 계속 편해 하니까 수완은 결국 선을 넘습니다.
회식 자리에서 주사를 부리기도 하고요 고주망태가 되어 서래의 집까지 찾아가기도 합니다. 이것은 명백히 전여친이 현여자 친구에게 찾아가 꼬장을 부리는 표현일 것입니다. 그러니까 수완과 해준 사이의 감정은 사랑이 있는 것입니다. 다음은 해준과 연수. 연수는 수완만큼 유대가 깊어 보이지는 않지만, 역시 해준과 콤비로 엮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연수는 사내에서 왕따인 자신을 살갑지는 않지만, 그래도 차별하지 않고 대해주는 해준을 썩 마음에 들어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의 관심 받기 위해 지속적으로 질문을 한다든지, 최연소 팀장을 달았다는 이력을 바탕으로 별 시답지 않은 일에도 매번 찬사를 보내기도 합니다. 연수와 해준 사이에도 수완만큼은 아니지만 역시 애정이라는 감정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 지점에서 수완과는 그렇다 쳐도 연수와도 사랑인가 라는 의문이 드실 수도 있는데 영화에 이런 대사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슬픔이 파도처럼 밀려오고, 어떤 사람은 슬픔이 잉크처럼 천천히 번진다. 이 논리는 사랑에 대입해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어떤 사랑은 불같이 타오를 수도 있고요 어떤 사랑은 미지근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랑은 쌍방 간에 평등할 수도 있고 어떤 사랑은 한쪽으로 쏠린 일방통행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해준과 수완, 또한 연수와의 사랑은 제각각 결이 다른 것입니다. 아무튼 해준이 이렇게 갈팡질팡 사랑의 미로를 헤매는 이유는 정안과의 관계가 식었기 때문일 겁니다. 둘은 사실상 거의 쇼윈도 부부의 느낌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물론 정안이 공학 박사라는 설정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둘의 교류는 다분히 이과적입니다. 주말 부부의 몇 퍼센트가 섹스리스 부부라더라든지, 중년 남성의 몇 퍼센트가 문제가 있다더라 라든지 등등 해전 부부의 세계는 통계와 숫자에 의거한 감성 없는 철저한 이성의 세계인 것입니다. 해준에게 정안과의 결혼 생활은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는 서래의 결혼 생활만큼 강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물들 간의 사랑 방정식은 담배를 통해서도 표현이 되고 있습니다. 정안이 담배를 끊으라고 푸시를 하는 인물이라면 서로의 수완, 연수는 해준의 곁에서 담배를 피우면서 지속적으로 그의 담배의 욕을 자극하는 인물입니다. 그러니까 헤어진 결심은 금연처럼 느껴지는 사랑으로부터 흡연과 같은 사랑으로 탈출하는 로맨스이기도 한 것입니다. 물론 헤어지기로 결심해서 묘사되는 여러 사랑들 중에서 당연히 서래와의 사랑이 가장 거대할 것입니다. 그녀를 향한 마음은 부산에서 수안과의 콤비를 끊어내는 사랑이었고 연수와의 콤비를 끊어내는 사랑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서래의 입장에서도 해준은 거대한 사랑의 대상처럼 보이는 겁니다. 서래는 해준에게 당신이 나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해주는 것을 반복해서 들었다라고 말합니다. 해준은 기억을 하지 못합니다. 알고 보니 실제 사랑해라는 말을 한 것은 아니고 서래가 기도수를 살해한 범인인 것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스마트폰을 바다에 버리라고 말하며 그녀의 죄를 덮어주려는 해준의 태도가 서로에게는 사랑으로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신이 붕괴되면서까지 나를 지켜주는 남자의 스마트 폰을 버리라는 문장은 사랑해 와 동의어인 것입니다. 즉, 스마트폰은 사랑의 상징인 것입니다. 서래 역시 해준을 강렬하게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을 희생해서까지 그를 붕괴 이전으로 돌려놓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바다에 던져도 결국 건져 올려지게 되는 사랑이라는 이름의 스마트폰을 본인이 직접 안고 들어가 바다에 묻히는 방식으로 박아 넣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서래와 해준은 모두 산보다는 바다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니 말입니다. 그러니까 헤어질 결심은 지독한 사랑 영화인 것입니다. 헤어질 결심은 모든 편견과 선입견을 깨고 봐야 제대로 보이는 영화입니다. 우선 해준과 수완은 동성 커플에 대한 은유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성과 남성이라는 뚜렷한 이분법으로 구분하는 기준에서 벗어난 인물 제가 보기에 연수가 집단에서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왕따를 당하고 있는 이유 역시 바로 그의 성 정체성 때문인 것 같습니다. 라이터로 불을 붙여주려고 하니 동료들이 피해 버립니다. 그러니까 헤어질 결심은 성역 없는 사랑을 그리고 있는 영화인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가 일반적이라고 생각하는 남녀 사이의 부부 관계가 다소 부정적으로 묘사되고 있기도 합니다. 이것은 박찬욱 감독님의 가치관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감독님이 제53회 백상 예술대상에서 아가씨로 영화 부문 대상을 수상하셨을 때 이런 소감을 하기도 했습니다. 성별, 성 정체성 지향 이런 거 가지고 차별받는 사람이 없는 그런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라고...또한 이동진 평론가님은 박찬욱 감독님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시기도 하셨는데 박찬욱 감독님은 자신이 사석에서 만나본 감독님들 중에 가장 사고방식이 넓게 열려있고, 어느 주제로 이야기해도 대화가 잘 통하는 재밌는 분이시다. 그러니까 헤어질 결심은 타인에게 어떠한 벽도 치지 않고 선도 긋지 않는 완전한 평등주의자, 자유주의자 박찬옥 감독님의 세계관이 물씬 어려 있는 영화인 것입니다. 영화에서는 호신 캐릭터를 통해서도 사회적 통념을 부수고 있습니다. tv에 나올 정도의 애널리스트이면 실제 세상에서는 소위 엘리트일 것입니다. 왠지 그런 사람이라면 겉모습 이더라도 교양 있는 척이라도 할 것 같은데 영화에서 호신은 처음 만나는 사람들 앞에서 저급한 농담을 늘어놓는 쌍스러운 사람처럼 묘사가 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서래와 호신이 문자를 주고받는 장면에서 서래는 맞춤법과 뛰어쓰기가 정확하게 문자를 보내고 있는데 반해, 호신은 맞춤법과 띄어쓰기에 많은 오류를 머금고 있는 것으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글만 본다면 누가 중국 동포, 누가 아닌지 판단이 되지 않습니다. 일반적인 영화나 드라마에서라면 당연히 호신이 중국 동포 캐릭터일 것입니다. 말하자면 헤어질 결심은 타인을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는 영화이기도 한 것입니다. 보고 듣는 것은 언제나 오류를 머금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해준이 서래에 반했던 이유는 물론 그녀가 미인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애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모습을 보면서 느낀 미각적 전의도 작용을 했을 것 같고. 서래의 손목 부위에서 나던 향기라는 후각 역시 영향을 준 것일 것 즉 오감을 이용해서 자신이 붕괴될 정도로 상대를 사랑할 때 비로소 타인을 바로 볼 수 있다고 말하는 영화인 헤어질 결심은 과연 기생충처럼 범대중적인 사랑을 얻을 수 있을까 라는 의심이 드는 영화이긴 합니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잉크가 번지듯이 서서히 젖어 들어오는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헤어질 결심은 굉장히 세련되고 우아한 그래서 사랑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는 하지만 한 번 빠지게 되면 결코 헤어 나올 수 없는 그런 영화입니다.
해외반응
1) 박찬욱 최고작 이라는 데 동의합니다. 볼 때는 몰랐지만 지금도 말러 교향곡 5번 4악장 무한 재생 중이예요... 음악만 들어도 가슴 한쪽이 아린 느낌..
2) 박찬욱 감독이 만든 가장 매끄럽고 섬세한 작품으로 올해 최고의 영화중 하나
3) 로맨스와 미스터리가 어우러진 걸작
4) 올해 나는 대단한 몇 편의 영화들을 봤다. 여기에 내가 좋아한 영화들을 적었다
5) 정말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감정의 흐름과 배우들의 연기력이 정말 인상 깊었어요. 장담하건대 올해 봤던 영화 중에 가장 우아한 영화였습니다.
6) 아직 이 영화를 안보신 분이 있다면, 지금 당장 추천 드립니다. 박찬욱 감독의 작품 아가씨도 마찬가지예요. 한국 영화를 찾아보면 정말 명작들이 많습니다. 얼마 전 칸 영화제에서 황금 종려상을 받았던 기생충도 추천드립니다.
7) 저는 한국 영화를 처음 봤습니다. 이렇게 작품성이 높은 영화들이 많다고요? 앞으로 한국 영화만 봐야겠네요.